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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권고로 시작하게 된 제 영국 이야기가 어느덧 마지막 편이 되었군요. 다 합쳐도 산문 정도의 양밖에 되지 않지만 세수대야만큼 얕은 지식으로 나름 열심히 적었으며 그 동안 틈틈히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대단하지도 않은데 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 그럼 마지막 이야기니 최선을 다해 긁적여 보겠습니다.

 

2007년 양쪽 무릎 십자인대 수술을 총 3번에 걸쳐 받은 이후 재활치료를 받으면서 틈틈히 하던 태권도는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2007년 말쯤 그만둔 이후 주말 어린이 반만 진행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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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2008년 중순쯤 Refugee Action에서의 자원봉사 일 또한 사정상 그만두게 됩니다.

그렇게 택시일과 디제이 그리고 통역일을 병행하며 라일라 어학원에 직/간접적으로 개입되어 있을 당시 라일라에서 어학연수 중이던 Ryo Ozawa라는 일본인 친구를 만납니다.

일본의 유명한 검도 선생님이자 ‘Kendo The Definitive Guide’의 저자 Hiroshi Ozawa 선생님의 아들인 료는 그해 검도 세계대회를 준비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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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리버풀 대학에서 고고학 박사를 하던 제 절친 Masashi Abe라는 친구는 합기도 (Aikido) 유단자로 전 세계대회 1위 수상경력이 있으며 전 일본 대모 진압대 교관이었기도 해서 두 친구가 잘 맞을 것 같아 소개시켜주게 되었습니다.

제가 더이상 태권도를 못하는 사연을 알게된 료가 그날 밤 술이 얼큰히 취해서는 제게 검도를 배워보기를 조용히 권하더군요.

그렇게 검도를 시작하게 되고 검도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으며 이후 료는 그해 세계대회에서 1위를 하게 됩니다. 이 친구들이랑 술 한잔씩 하던 날은 정말 겁나는게 없었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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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쓰리잡에 시달리면서 결국 같은 해 2008년 말쯤 검도를 그만두게 되지만 다행히 Kana Muto라는 검도 4단의 친구를 만나게 되고 주말 태권도 어린이 반이 끝난 이후 개인교습을 해줄 수 있겠냐는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여 주었습니다.

여성에 작은 체구였지만 호구를 쓰면 다른 사람이 되더군요. 평생 맞을 손목을 그때 다 맞았던 것 같습니다.

이후 매년 규모가 두배씩 커지던 라일라가 드디어 재정 관리가 되지 않을 정도로 커졌을 때 택시와 통역일을 그만 두고 재정을 담당하게 됩니다.

회계라곤 배워본 적도 없고 고등학교 2학년 1학기 중간고사 수학시험 빵점이라는 자랑스러운(?) 경력을 소유한 저였지만 내돈은 내가 관리한다는 생각에 재정관리를 맡게 되고 택시 시험때와 흡사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우선 Amazon에서 비지니스 파이넌스라는 책을 한권 샀습니다. 읽다보니 엑셀이 필수더군요. 그래서 엑셀에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 한 술 더 떠 학생수속 프로그램인 Class와 회계 프로그램인 Sage Accounts를 해야 되더군요. 달리 방법이 없어 그냥 매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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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영국으로 무작정 떠났던 2003년 이후 6년만에 오전 9시 출근, 오후 5시 퇴근이라는 익숙하지 않은 시간대에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카나 선생님이 일본으로 귀국한 이후 흔히 일컫는 안정된(?) 삶이 이렇게 시작되고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다시 리버풀 도장으로 돌아가 정식으로 검도를 시작했습니다.

2010년 정원이 있는 2층집으로 이사를 하고 같은 해 7월 검도 1단을 따고 2011년 초 라일라가 교실 18개의 규모로 커지면서 리버풀 시내 중심지로 이전을 하고 같은 해 7월 검도 2단을 따고 2013년 3월 라일라가 스타즈 어워드에서 영국 1위, 세계 3위 어학원으로 등극하게 되고 같은해 영국 시민권을 취득한 이후 2013년 6월까지 이렇게 안정된 삶은 지속되었습니다.

그리고 인생이 다시 한번 뒤바뀝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디론가 무작정 도망치고 싶었던것 같습니다.

잘 나가던 회사의 초기 창립 멤버로서 안정된 삶이 보장되어 있었지만 떠나야만 했고 그런 결정에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이 힘들었지만 결정한 건 해야 하는 성격이라 2013년 6월 라일라와의 인연을 끊게 됩니다.

이후 가방엔 도복과 호구, 어깨엔 죽도가방을 메고 영국 전국 도장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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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해 7월 3단 심사를 통과하게 된 결정적 도움을 주신 런던의 조현홍 관장님을 비롯해 언제나 저를 환하게 받아주시던 영국 검도회 선생님들 및 친구들께 항상 감사드린다는 말씀 이 글을 빌어 드리고 싶습니다.

이후 한국행을 결정하게 되고 9월 정들었던 리버풀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꿈에 그리던 힙합과 재즈의 도시 뉴욕행을 결정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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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만 마시면 더 처지는 눈…Charlie Parker가 연주했던 Bird Land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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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뉴욕행은 왕복이 더 저렴해 왕복 티켓을 샀었고 뉴욕에서 한국행은 편도가 더 저렴해 편도 티켓을 샀었는데 뉴욕 출국일이 둘 다 같았었죠.

2주라는 시간을 혼자 뉴욕에서 보내면서 많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출국 당일 뉴욕 JFK 공항에서 영국행과 한국행 티켓 둘을 들고 태어나서 가장 심각하게 고민해 보았던 것 같습니다.

연금술사의 한 부분이 기억나더군요.

소년이 꿈을 찾아 스페인 안달루시아 평원을 떠나 2시간 거리의 아프리카 지역에 도착 하자마자 가진 돈을 모두 도둑 맞습니다. 이후 11개월이라는 기간동안 크리스탈 가게에서 일하며 다시 안달루시아로 돌아갈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돈을 모은뒤 아래의 구절이 나옵니다.

-그가 있는 곳으로부터 안달루시아 평원까지는 배로 두시간 거리며 피라미드와의 사이에는 거대한 사막이 가로 놓여 있었다. 문득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찌 되었든 보물에 두시간 거리만큼 더 가까이 와있는 셈 아닌가. 이 두시간 거리를 오는데 꼬박 1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거야.”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생각이 이어졌다. “난 내가 왜 양들에게 돌아가기를 원하는지 알아. 난 양들을 알아. 양들은 내게 많은 일을 요구하지 않고 난 양들을 좋아하지. 사막도 좋아질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곳엔 나의 보물이 숨겨져 있어. 설사 보물을 찾지 못한다 해도 언제고 집으로 돌아갈 수는 있을거야. 내 인생이 내게 또한번 이렇게 충분한 돈을 주었고 필요한 시간도 있는데 못할게 뭐 있겠어.” 순간 그는 커다란 기쁨을 느꼈다.-

다시 제 나라 한국으로 돌아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있습니다.

쉬운걸 바란건 아니지만 생각했던 것 보다 쉽진 않은 것 같습니다.

단 한가지 확신 할 수 있는건 현실에 최선을 다하고 있고 전 사는게 너무 재미있습니다.

블로그에 올리는 글이라 삭제된 부분도 많고 글 쓰는 재주가 없어 재미있게 엮어내지 못했지만 읽어주신 분들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To Joseph and Harry Lee


Gsu쌤_이근수 co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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